煙氣

연기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해발 이천육백척의 고지에서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바닷바람이 무섭다고
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
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연기

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
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
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

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선수
백화가 만발한 언덕 저편에
부처의 심사같은 굴뚝이 허옇고
그 우에서 내뿜는 연기는
얼핏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 꽃밭 넘어서
짓궂게 짓궂게 없어져보려는
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김수영(1955)

映寫板

고통의 영사판 뒤에 서서
어룽대며 변하여가는 찬란한 현실을 잡으려고
나는 어떠한 몸짓을 하여야 되는가

하기는 현실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
영사판을 받치고 있는 주야를 가리지 않는 어둠이
표면에 비치는 현실보다 한치쯤은 더
소중하고 신성하기도 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두 어깨는 꺼부러지고
영사판 우에 비치는 길잃은 비둘기와같이 가련하게 된다

고통되는 점은
피가 통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비둘기의 울음소리

구 구 구구구 구구

시원치않은 이 울음소리만이
어째서 나의 뼈를 뚫으고 총알같이 날쌔게 달아나는가

이때이다---
나의 온 정신에 화룡점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영사판 우의 모오든 검은 현실이 저마다 색깔을 입고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비둘기의 두 눈동자에까지
붉은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다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

김수영(1955)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김수영(1954)

쾌락

님이여, 당신은 나를 당신 계신 때처럼 잘 있는 줄로 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나를 아신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두고 멀리 가신 뒤로는, 나는 기쁨이라고는
달도 없는 가을 하늘에 외기러기의 발자취만치도 없습니다.

거울을 볼 때에 절로 오던 웃음도 나오지 않습니다.
꽃나무를 심고 물 주고 북돋우던 일도 아니합니다.

고요한 달 그림자가 소리없이 걸어와서 엷은 창에 소근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가물고 더운 여름 하늘에 소낙비가 지나간 뒤에,
산모퉁이의 작은 숲에서 나는 서을한 맛도 달지 않습니다.
동무도 없고 노리게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한용운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다시

큰 달 떠오르는 저녁이면
당산나무 큰 가지
치마 풀어 걸어놓고
그래, 모두 지랄염병이었어
신파조로 컹컹거리면서
성냥 좌악 그어 담배 붙여물고
침 카악 뱉고
눈물 그렁그렁 담아서
먼 산 바라보며
당산나무 손가락마다
붉은 옷고름 뜯어 걸어놓고

새 몸주님 보오시라
탯줄 가지 마다
피 멕인 고름 걸어두었으니
들어와보오시라 흠향하시라
너울너울 즐기시라
향긋한 오줌 차오르는
너른 태반가에
돗자리 깔아놓았으니
들어와 누우시라
정말 또 한 번 속아주고 싶은
새 몸주님

코 히잉 풀어놓고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당산나무 빙빙 돌면서
그러나, 언제나 지랄염병이엇어
뱃속에 아직 남은 미친 세월을 꽝꽝 두드리면서
가슴을 꽝꽝 치면서
담배꽁초 휙 던지면서
마른 북어 탕탕 두드리면서
새 몸주님 들어와보오시라

김혜순(1990)

큰 눈동자 이야기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니 지구는 마치 한 개의 눈동자였습니다. 그의 우주선 그림자가 지구에 은은히 비쳤습니다. 그는 우주선을 타고 그 눈동자 안으로 진격해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젖은 눈동자 위에서 날선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눈동자 위에다 집을 짓고 탱크를 굴리는 개미떼 같은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는 눈동자 위에서 살면서 문을 잠그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동자 위에서 우물을 파고 그 물을 받아먹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는 하염없이 지구를 돌았습니다. 눈꺼풀이 없어 한번도 눈감지 못하는 지구와 그는 간혹 쓸쓸히 눈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지구의 눈엔 핏발이 자주 서고 눈물이 눈동자 밖으로 흘러넘쳤습니다.

겨눠 총!
병사들은 밤중에만
방아쇠를 당깁니다
나방이를 쫓는 연기처럼
탄환이 쏟아집니다
흰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달아납니다
낮은 포복으로! 자세를 낮춰!
밤고양이처럼
총구에 제 눈동자를 매단 채
병사들이 다가갑니다
젖은 눈동자 위에서
한번도 눈 깜박이지 못하는
핏발 선 안구를 짓밟고

김혜순(1990)

사랑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안도현

측백나무가 되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내려앉는 참새떼,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고마워라
나를 측백나무 한 그루쯤으로 여기는

안도현

세상의 비둘기들

자, 이제부터 너는 부디 망각되어라
세상의 비둘기들, 평화의 상징들
어제도 너는 대로를 가로지르며 버스와 대적하기도 하였겠지만
바퀴에 짓이겨지는, 눈살 찌푸려지는 너는 소멸하라
너의 유일한 상징성이란 것
초고속으로 솟아오른 초고층의 도시 하늘처럼
일자로 뻗은 가로수의 콧대 높은 숨소리처럼
뺀질거리는 일상의 껍데기라는 것
거리 곳곳에 배인 너의 냄새에서
도적과 같은 탐욕의 찬가는 퍼뜨려지고
한 알 쌀알에 대한 감사한 인사와 창공을 향한 겸손하도록 높은 도약은
방향제에 취하듯 종적을 감추었더라
그러니, 너의 뿌려진 깃털만큼 가벼워진 세상의 마음은
울적할 대로 울적해져서는
비가 내릴 때마다 죽어버린 사랑이 넘치고
광고판을 쉴 사이 없이 닦아내던 저 고고한 모험가의 위용도
사실 이상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깊은 후회와 함께
손때 묻은 걸레와 함께
시멘트 바닥으로 풀썩 안겼던 것이다
단지 그 날만, 불붙은 성화 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던
한 마리 불사조의 전설과 함께 날아가 버린 너는
상징적인 것
재개발되는 최첨단 집터로 옮아간 것
매캐한 타이어의 불씨에 녹아서 검은 연기처럼만 피어오른 것
그리하여, 너는 기록에서 사라져 버려라.

시간

그대의 발길이 잠시 내게 머물면서
이로부터 나는 너를 진심으로 그리워한다
너는 아름다운 방문객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하늘 아래
어지럽고 미식거리던
점점이 부서지는 나의 의식은
각성제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네가 그립다
비록 늘 앞서는 그대의 긴 여운이었고
바람 같은 나는
속 깊은 먼지로 나를 치장하였음에도
무심히 반복되는 너의 격려에
그대의 똑부러진 욕망을 따라 울어 걸으며
빛처럼 긴 꼬리를 흔드는 나는
한 없이 해맑아지면서라도
땡땡땡 종소리를 따르는, 겁 없이 너의 동행자 된다

동상

너를 보면서 세상엔
도모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난 위로 받는다.
탄생과 함께 이미 네 손에 쥐어진 검은 검으로
또는 지혜의 책과 정의의 지팡이로
생활화돼 버린 우리의 기대를 한껏 자랑하는 너를 보면서
세상엔 고뇌하지 않기에 쉬워진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난 또 위로 받는다.

언뜻 보기엔
부담스러운 조명을 받고도 우뚝 솟아가는 밤거리의 소란들에 잊혀지는
시체와 같은 것이라고 너 자신 자조할지도 모르겠으나
반드시 울부짖으며 한 호흡마다를 살아가는
파리의 날개짓에게나 필요한
팽팽한 긴장감을
내 온몸으로 누리는 그 위태한 자유의 만끽을
나는 너를 보면서 달래곤 한다.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시간이 되면
우리의 기대와 함께 너는 아마 산산이 분해될 운명이다.
흐느적거리는 쇳물이 되거나 가벼운 가루가 되어서
네게 주어진 것들과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므로
찰나의 번뜩임으로 빚어진 너란 자세를
시간에 쫓기는 나는 기리게 되는 것이다.

노인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기형도(1988)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1988)

生活

시장거리의 먼지나는 길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의 멍석의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의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웃는다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나는 또 하나의 생활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면서
이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생활은 고절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

김수영(1959)

陶醉의 彼岸

내가 사는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수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보아 두려워하는 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 우에서 솔개미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있을 운명---
그것이 사람의 발자욱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 우에 하잘것없이 앉아있으면 그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소리를 남기지 말고
네가 던지는 조그마한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있는 기계와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우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에서 날아온 무수한 날짐승들이여

김수영(1954)

잔상(殘像)

우리 어찌 사람을 버리디?
그냥 감정을 버리는 거야
죽은 것처럼 살지는 못하는 거잖아
살다보니 가끔은 미련에
온몸을 떨기도 하는 거지

어차피 사라지는 기억들이더라
불과 며칠 사이에
좌절은 삭아서 새로운 사랑을 피우던 걸
모르는 거 없지 않아

시간의 흐름
그렇게 가다가 가다가 보면
희미하게 옛일을 쫓다가 보면
아 가물가물해지는 우리는
설익은 밥과 같이 소화되는 일회성의 에너지

지금 죽어서 만족하지 못할 바에야

손 벌리고 웃어보이지는 말아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하나의
작은 잔상이 아니겠니

악몽이 아니었다

정말 남은 것이 없어서
너의 냄새
널 느끼지 않았다
휘파람 소리 지극히 그윽했겠지
꿈이 아니라면 바람의 소리라 할 걸

축소해서 축소해서
한 장의 지도에 담을 수 있었던 세상이라면
네가 있던 그 나라
접어서 툭툭 이 베개 속에 묻어 두겠지

지난밤은 너의 것
보이지도 않을 어둠 속에서
넘실거리는 너는 기억에도 남지 않는
찰나를 건드리고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구둣발로 땅땅 땅을 구른다면
오즈처럼 나는
오매불망 그리운 텍사스 대초원
돌개바람 훅하고 일어나도
잊지 못할 너의 땅으로

한 모금 바닷물과 같은 정신착란으로
마음에서도 사라져라
간절한 너는
간밤을 쓸고 간 막막한 악몽이니까

실없는 농담

승강기가 내려오면 녀석은 저기 저만큼 이 앞에 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염라대왕 오른쪽에 앉고 너는 왼쪽에 앉게 된다
녀석은 처음 가는 이 길을 두려움도 없이
성큼성큼 내딛어온 것이다
나는 녀석을 위해서 촘촘한 바늘방석을 주장하겠다
아마도 악다구니처럼 살아왔으므로
솜사탕 같은 바람을 등에 지고 가부좌로 앉아서
쉼 없이 살아온 것을 보상받아야 한다
살갗이 찢기고 핏줄이 터질수록 쾌락은 산들 녀석의 무릎을 희롱하고
오늘도 하루가 질기게 길었지만 그래도 자연은 아름다웠다고
노래하는 혀끝에 인두처럼 달군 재갈이 얹히겠는데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녀석의 기억들을 뛰어놀고 말리라
그러면 너는 파마 같이 부푼 손을 녀석의 머리에 올리고
고귀한 자로서 선언하지 않을텐가
뒷돈을 받아먹는 하급 공무원처럼 살지 않았으니까
가로수처럼 늘어선 선녀들에 둘러싸여 한 모금만 마셔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꾄다는 약주를 마시면서
한 입 베어 물면 영생을 주는 복숭아를 녀석이 맛보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살아온 가운데 노력이 모자라지 않았고
정직과 성실을 온몸 곳곳에 핏물로 새겨나간 제왕의 후예이므로
표창장 종이 한 장을 모가지에 걸고
귀가 맑은 새소리에 실어서 천년을 하루처럼 되돌리려 않겠는가
바로 그때에 이르러선 너와 나는 염라대왕의 면전에서 얼굴을 맞대고 소리 높여
지난날보다 당면한 사안을 논쟁해야 할 것이다
녀석에 대하여 왜 우리는 달라야 하는가를
땅속 끝에 귀를 박은 나무에 대고
이곳에 터 잡은 나는 너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성큼 걸어왔던 녀석에 대하여
너는 속 깊은 용기를 칭찬할지 모르겠고
찬물을 머금었더라도 더운 입김으로 울었던 순간들 가운데
축복해도 좋을 성공을 찾으려 들 것이다
찬찬히 뜯어보아도 녀석은
철든 아들이었으며 너그러운 아버지였고 꾸밈없는 불꽃이었으니까
잠자코 있는 나는
언제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너와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너의 소리에 흥얼거리기도 있겠다
오직 진실은 아는 건 녀석만이 아니리라
끈적한 저녁 햇살을 결코 놓지 못했던 미련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밥 한 끼를 물리지 못했고 타오르는 욕정에 대해 성실했던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을 정직하게 주워 올렸던 한 가지 삶에서
넌 대책 없는 참회를 끌어내는 것이라서
나는 팔짱을 끼고 너와 녀석을 번갈아보며 장난기 가득한 맞장구를 칠 수도 있겠다
그게 다 실없는 농담 같아서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건
지독한 고독도
멀뚱거리는 심심함도 아니란다
간절한 그리움도
미칠 것 같은,
애틋한 사랑도 아니란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나게 만드는 건
빈 자리의 허전함도 아니야
그 잘난 얼굴에
그 잘난 매력도 아닌 걸
그가 가진 그 어떤 장점도 사실은 무의미하단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바로 그건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
아침에 깨었다가 저녁으로 다시 누웠던 그곳으로 들어가는
일상이란 것
우리 삶의 지극한 자연다움

흔하디 흔해서 굳이 인식하지 못하는 그란 존재
마음 속 한 자리를
우린
늘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거란다.

그림자에게

길 끝에 너 좀 서 있으면 안 되나
지금 주저앉아 쉬고 싶은데
한편에 엎뎌져 긴 잠이라고 자고 싶은데
풀냄새 뭉뚱그린 내 머리 너머로 숨을 헐떡임에도
주저리주저리
긴 넋두리
사람을 부르는 연기처럼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나

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으면 안 되나
사방 바람에 흙먼지 날리던 때도 있었고
너구리, 까치 흥겹게 도란거리던 자연에 대하여
치렁치렁 녹이 차오르는 못과 망치
나 주워 올리리라 다짐하던 밤
골똘히 지새우고 말았거든, 그로 인해 실은
깊어진 건 내 졸음의 귀신일 뿐이야

가끔 한 눈 팔더라도
그 길의 끝에 선 너는,
샤워하듯 반복되는 나의 각성을
선잠에 몸서리치는 것처럼만 지켜볼 수 있으면서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로
우쭐거리는 허수아비 놀리듯
어떻게든 서 있으면 안 되나

걸인예찬

그날 너는 천연 잔디에 앉아서 이를 잡았다
한쪽 팔은 누구에게 잘려먹었는지
멀뚱하게 흔적만 남아 덜렁거리는 시계추처럼
시간은 흘러서 상처는 뭉뚝하게
유들유들 모나지 않고 윤이 자르르 흐르도록 반들거려서
차마 눈이 부시도록 너는 빛났다
먼지가 이는 도로라도
차소리 사람소리 이를 잡아 잘근잘근 씹어대는
천연 잔디에 앉아서 너는
오늘은 그런 날, 사람이 태어나다 살다 죽어가는 날
살아서 머리카락 수를 세는 날
분수가 솟아도 좋을 자리에 터를 잡고
유난히 사람 좋은 웃음을 살아가고 있었다.

신파(新派)의 소재(所在)

우리가 슬플 일은 없습니다
옛날을 추억한답시고,
고향이 그립다고 해서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고,
형제, 자매,
가난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다면서
그렇게 슬퍼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처럼 고생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그때 우리 얼마나 어려웠는데,
밥 한 끼 제 때 못 먹고, 버스비도 없이 걸어가야 했으니까
지금도 우리 그땔 생각하면
소리 없이 눈물이 괴고
우리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버텨왔다고
얼굴 비비고 어깨 두드리며
서로를 위로할 까닭도 전혀 없습니다.

어머니!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
이젠 마침표를 찍을 때가 온 겁니다, 이젠.
우리가 언제 당신의 아들이었던가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일
누군들 서럽지 않아서
눈물을 떨구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정작 눈물이 말라 비틀어져선
스아악 그어진 성냥불에 훅하고 산화될 말라비틀어진 장작개비 같은 날들
산 같이 산 같이 거대한
슬픔은 오늘도 그러합니다, 건조한 사막에 덩그러니 벗어진 뱀가죽처럼

손가락의 휴가

비상하는 파편 같았다
손가락은 맹렬한 톱니를 받아서 하늘로 솟구쳤고
우리는 잃어버린 탄피를 찾듯 막사 주변을 뒤지고 또 뒤졌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졸병은
남은 손가락을 움켜쥔 채 삐져나오는 검은 핏물보다 우리의 절박함에 기가 죽었다
짬밥 통에서 기어나온 손가락
누군가 그것을 가리켰다
어린 졸병에게로 돌아간 하얀 핏기 가신 그것
안간힘을 써가며 그걸 끼워 맞추던 졸병은
탈출하듯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
부산함이 사라진 시간들
잘려나간 그것처럼 핏기 가신 불안이
섬을 뱅뱅 맴돌았다.

얼마 후, 손가락에 대한 귀대명령
썩어가는 그가
차분한 신고를 마치고
내무반 한 구석에 모포를 덮고 펑펑 목을 놓아버리자
우리의 군 생활은 다시 무사할 수는 없었다.

방화의 추억

신은 어린 아이인지도 모른다
저질러진 생명들
하늘을 뚫고 내려온 바람은
내가 아는
가장 무서운 축복이었고
불장난 같이
불장난 같이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분별력 있는 어른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날
성냥을 촤아악 그었었다
빨간 불길을 떨구며 이불 위로 몸을 던진 성냥개비
엄마는 내 손을 끌고
타오르던 이불을 짓이겼고
그날 화재는
그렇게 종결되고 말았었다

기억하기 싫다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엄마의 회상은 소름처럼 일어날 것이다
장롱 구석에 쳐박힌 이불에서는
아직도
분별없는 생명이 재를 남기며 타들어가고 있으니까
바람의 세례,
엄마의 기도를 담아서
후욱하고
내뿜어진
외마디 불티처럼
무고한 방화의 누명이여

시 쓰는 일을 후회하며

말이 덤빈 것은 몇 개의 시를 만들고 나서였다
말은 신나게 도발하며 나의 기억들을 건드렸고
기억들은 광부처럼 밑으로만 들어갔다
건져 올릴 것 없는 폐광이란 있을 수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재발되는 병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그러진 영상으로 빛나는 과거들
과거들의 발광
미치도록 쓰라린 상처도 있으며 아물어서 흉터 없는 상처도 있었다
얼룩진 자존감을 윽박지르던 나의 독설과 나의 비아냥도 비문마냥 깊게 새김을 받았다

굳이 덤비겠다는데
차마 어쩌지 못하겠더라
나는 친구에게 하소연의 넋두리를 건넸다
친구는 나의 항복문서를 수락하듯이 고소했었다

기억을 버리는 것이 삶의 일부라면 그것을 주워 담는 것은 삶의 전부란다

그는 내가 바란 답을 끝내 해주지 않았다

일출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삼백육십 도의 곡면마다, 하늘과 바다가 어둠으로 접붙었을 때



수박이 쪼개지듯
아침이 피어나던 날
그 소리를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벌겋게 달궈진 칼날이 꽂히자
하늘과 바다는
익을 대로 익어버린 속살을
한껏 벌리고는

한 입 베어 물고 싶던 세상

그때 우리는,
우리의 배는
위험한 항해 중이었습니다
미사일이 하늘 끝을 겨냥하고 폭뢰를 은밀히 담그며
보이지 않는 적함을
적발하기 위해서
차게 울던 바다를, 함교를 떠나지 못했던 우리

자상(刺傷)으로 기억될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또렷한 휴전선을 그리며 갈라지느라고 하늘과 바다는
태고적 신음으로
달콤한 내장을 꺼내버린 일이었습니다

분노에 대하여

살면서 그런 일을 대개는 겪는 모양이었다 진득하지 못한 분노는
괜한 바닥을 향해 모욕스러운 침을 뱉어버리고
우쭐거리듯 발길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밤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볕을 받아내는가
일그러진 그림자를 끌면서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정밀한 관찰일지로 기록될
가득한 문자들의 세상
한 평의 무덤에서마저 끝내 썩히지 않을 비석으로 음각하여
침상에 남겨진 환자복처럼
거무튀튀한 핏빛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건드리는 건 모두 금이 될 수도 있었다
신화로 남았다면,
그러나 짭쪼름한 자동차 매연에 탐닉했고 오염됨의 아이러니를 동경했었다
접촉하는 순간마다 라이타 불꽃처럼 타오르게 됨은
숙명이되,
나의 선택이었다

한번쯤 기록은 돌이키는 줄 알았다
역사책에 남겨질 거대한 서사는 아니라도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가 불현듯 발견되는 일기장의 풋풋한 글씨체를 더듬어 나가는
짧은 회상
모욕이 사라지면
분노는 원인을 잃을 테고
횅하니 돌아선 거리의 냄새라도 생각나리라 기대했건만

문자가 이야기를 잃은 것이 아니라
순간을 살다간 것에게 문자는 침묵하는 건지
비석이 세워진 무덤에 고개 숙이고 다시 제 무덤 자리를 구해야 하는 걸,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쳤더라도
떠난 자리 침상에나 남아지는 걸,
차라리 눈감고 말 생생한 기억보다는 판에 박힌 신화가
성찰의 가르침이라는 걸,
분노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쟁기념비의 웅장함에 빗대어

너의 이름

어느 날 갑자기, 너의 이름
내 감탄사 되었다
횡단보도의 짧은 정적의 곡절에도 너의 이름을 묻고
알싸하게 떨어지는 겨울비의 방울방울은 너의 이름에서
상쾌한 울음을 뿌리더구나
지나치는 사람들의 입 냄새마다
찐하게 속삭이는 너의 목소리며
춥게도 옷을 휘감은 노점의 포장마차는
‘김떡순’도 아닌 너의 이름으로 휘장을 감아치고
빗살같이 흐드러진 버스의 차창에서는
성깔 고약한 붓놀림으로 너의 얼굴이, 너의 얼굴이

빛깔이 고운 단풍을 그리워하다가
산으로 달려들던 자동차에서 외마디 비명이 뱉어지면
시간은 단칼에 몰아부쳐 낙엽을 떨구고
향긋한 가을의 신음 소리는
결국
너의 이름, 몇 자를 남길 뿐이었음을

더 이상 가진 것 없는 가을 거리에
겨울은 도적떼처럼 성난 노략질이며 무심한 칼바람을 일삼음으로써,
슬며시 입 안을 맴돌던 입김의 씨앗은
동글동글 새알의 모양새 되고
한 숨, 한 숨, 생명이 영글어
너의 이름, 한 단어로 새어나왔으니
사납게 닦달하는 싸늘한 기세에 눌린
배신의 기운은 아니었던가

허투루도 부르지 못할 주문인 것처럼
꼭꼭 감추어 둔 너의 이름이
이렇게 나의 가을을 밀고하고 말았구나.

혹은 현대물리학이 말하길

혹은 현대물리학이 말하길
우주의 종말은 영원히 팽창하는 적막한 암흑천지란다
수백억년의 시간이 흘러서
마지막 태양까지 분해해버리면
빛은 사라지고
원자마다의 거리가 태양과 지구보다도 멀어져서
이웃하는 것들의 어떤 발버둥에도 원자는 미동도 못하는 절대고독에 이르게 된단다
그때가 되면
바람은 문신처럼 원자에 각인되겠지
거추장스런 서로의 몸을 밀치면서 열띠게 자리다툼하던
정감어린 파티라고 회상한단다

샴쌍둥이 분리되다

사실 넌 너무 불행하게 태어났던 게지
너의 배와 나의 배가 엉겨붙기 시작할 때부터 핏줄은 묶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몰골로 서로를 껴안아야 했었어
그런데 사랑이었지
거울을 들이대듯이 내 눈 앞에 다가선
너의 복잡한 표정들에서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서로에 대한 동정과 연민 등등
떨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걸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너의 피가 달아오르면
덩달아 발그레 따라 웃었고
귀가 간지러운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는 라디오를 켜느라고
살갗이라도 닿는 순간엔
우린 황홀한 나르시시즘으로
신경에서 신경으로
아,
넌 나의 쌍둥이

아마 바람이었던가
속삭였던 게
각자 가는 길이 달라야 했다던
너를 가로막은 나와 나를 가로막은 너를
이젠 결행하라고
네 개의 다리가 두 개가 되고 두 개의 머리가 한 개가 되라고
그리고 나머지 한 개의 심장을 가져버리라고
불행한 탄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너의 절박한 소망이 우리의 심장을 방망이질 하는 동안
얄궂게도 난,
너를 원망하고 말았던 거야

내 몸을 베어내던 칼끝으로, 비로소
해방된 너의 운명이여
행복한 인생을 마치고 다시 만날 날에는
너 부디 날 용서하여라

그대가 보고 싶은 건

내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강해지는 건
무의미해야 했던 그대의 자리가
자꾸만 도드라지는 건

발밑에 풀 하나가 날개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참 의미도 없는 생명이었는데
참새 똥이나 주워 먹고
그렁그렁 바람 피리나 불던 무의미한 색깔이었는데
여름날 오후 누구와 눈이 맞았는지
날개를 쫙 펼치고 하늘로 쳐 오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어쩌나
비라도 오면
땅이 비웃도록 먼지를 뒤집어쓸까봐
노심초사
무르고 무른 나는 나약한데

값어치도 없는 저것의 날개짓은
나에게
용맹을 부르듯이
당신을 상기한 겁니다

내 발가락은 천 개

내 발가락은 천 개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천 개의 심장이
내 두 다리를 지탱한다 둥근 하늘을 밟고 밟아서 평평한 평발이 되도록 내 발가락은 살아서
빨간 꽃봉오리를 낳고
빨간 핏물을 들이고
저 지나는 사람마다의 가슴에 달달한 열매를 안긴다

언제부터인가
모양새 없이 닳아빠진 신발을 차고
뭉클하게 수선된 감성의 밑창을 딛고 서있을 때마다
발가락은 꿈틀 무좀균을 배양했던 것인가

달음질쳐 온 길을 되돌아보곤
혹여 떨어져 낙오된 내 발가락 하나 둘
문둥이의 오열처럼
그것은 내 살점이며 이것은 내 몸뚱이니 역한 냄새라고 뒤돌아 내빼서는 안 될 일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진 길
천 개의 눈이 되고 천 개의 코가 되어 쓰다듬어 내닫은
그곳 어딘가에
흙무덤 이불 삼아 잠들어버린
그것은 내 발가락
나의 밑바닥이었다

천 번을 사는 것
결국 죽는다는 것
발가락 끊길 때마다 숨을 가쁘게 나는
산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로 구르는 꿈을 꾸고 만다.

생존이여, 기막힌 저주여!

1.
술독을 이기지 못해 버스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사내는
생애를 채운 더운 기운에 취해
밤바람 어두운 자취로는 쉬이 사라지지 못했다
누가 그의 앞에 융숭한 아스팔트를 깔았을까
그 사내는 한 떨기 나뭇잎처럼 땅 아래로 썩어지고 싶더라도
번드르르한 우리의 격려, 우리의 위로는
제법 관대한 세상의 동정은
겨울바람 짓눈깨비처럼 차갑기만 하였을까

2.
낯을 들지 말자
골판지 박스 세워 집을 만들고
신문지 촘촘히 바닥을 깔고
안으로 들어오는 지하철 형광등이 짜증나면
손에 쥐어준 오백 원 짜리 동정이라도 내동댕이쳐서
한 잠이라도 마음 편하게 포기해버리자

3.
생존은 무의미한 것
저주 받은 생애
욕망으로 포장한, 공포로 덫을 놓은, 쾌락과 고통의 승산 없는 동전 던지기
이로써 사내는 한강 다리에 한 가운데 고개를 걸치고는
목을 놓아 울음을 울었다.

깨어진 사이다병의 바다

먼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었네
그곳이 보고 싶어서
시간이 남아돈다고 생각했지
가까운 아스팔트를 밟다가
폭주하는 파도와 실랑이하고 싶어서
게으른 오후 햇살에 취해
취기어린, 맑지 못한 눈으로 세상을 희롱하려 했다네

발끝에 차인 깨어진 사이다병 하나의 바다
애꿎은 마찰음과 함께
달구어지고 매만져진 영롱한 에메럴드 빛은
깊게 울다가 지친 듯하였는데

실상은 톡 쏘는 탄산수의 흔적을 더듬고 말았네
상상도 못했던 우연한 발견
정작 수평선은 가까운 시야에서도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지 않았고
소중한 집착은 어쩌다가 발길질당한 깡통의 행방을 뒤쫓는 어린 아이와도 같아서
한 발짝 아래 미시 우주의 경계로

태풍이라도 실어오길 바랐지
이제 그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는 그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도 있었는데
수정처럼 쓰라리게 연마된 상처의 입자는
적막하기만한 바닷바람에 싸여
하루해를 마치는 저녁이 되어서야 긴 한숨이 되어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