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큰 달 떠오르는 저녁이면
당산나무 큰 가지
치마 풀어 걸어놓고
그래, 모두 지랄염병이었어
신파조로 컹컹거리면서
성냥 좌악 그어 담배 붙여물고
침 카악 뱉고
눈물 그렁그렁 담아서
먼 산 바라보며
당산나무 손가락마다
붉은 옷고름 뜯어 걸어놓고

새 몸주님 보오시라
탯줄 가지 마다
피 멕인 고름 걸어두었으니
들어와보오시라 흠향하시라
너울너울 즐기시라
향긋한 오줌 차오르는
너른 태반가에
돗자리 깔아놓았으니
들어와 누우시라
정말 또 한 번 속아주고 싶은
새 몸주님

코 히잉 풀어놓고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당산나무 빙빙 돌면서
그러나, 언제나 지랄염병이엇어
뱃속에 아직 남은 미친 세월을 꽝꽝 두드리면서
가슴을 꽝꽝 치면서
담배꽁초 휙 던지면서
마른 북어 탕탕 두드리면서
새 몸주님 들어와보오시라

김혜순(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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