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가락은 천 개

내 발가락은 천 개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천 개의 심장이
내 두 다리를 지탱한다 둥근 하늘을 밟고 밟아서 평평한 평발이 되도록 내 발가락은 살아서
빨간 꽃봉오리를 낳고
빨간 핏물을 들이고
저 지나는 사람마다의 가슴에 달달한 열매를 안긴다

언제부터인가
모양새 없이 닳아빠진 신발을 차고
뭉클하게 수선된 감성의 밑창을 딛고 서있을 때마다
발가락은 꿈틀 무좀균을 배양했던 것인가

달음질쳐 온 길을 되돌아보곤
혹여 떨어져 낙오된 내 발가락 하나 둘
문둥이의 오열처럼
그것은 내 살점이며 이것은 내 몸뚱이니 역한 냄새라고 뒤돌아 내빼서는 안 될 일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진 길
천 개의 눈이 되고 천 개의 코가 되어 쓰다듬어 내닫은
그곳 어딘가에
흙무덤 이불 삼아 잠들어버린
그것은 내 발가락
나의 밑바닥이었다

천 번을 사는 것
결국 죽는다는 것
발가락 끊길 때마다 숨을 가쁘게 나는
산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로 구르는 꿈을 꾸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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