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동자 이야기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니 지구는 마치 한 개의 눈동자였습니다. 그의 우주선 그림자가 지구에 은은히 비쳤습니다. 그는 우주선을 타고 그 눈동자 안으로 진격해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젖은 눈동자 위에서 날선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눈동자 위에다 집을 짓고 탱크를 굴리는 개미떼 같은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는 눈동자 위에서 살면서 문을 잠그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동자 위에서 우물을 파고 그 물을 받아먹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는 하염없이 지구를 돌았습니다. 눈꺼풀이 없어 한번도 눈감지 못하는 지구와 그는 간혹 쓸쓸히 눈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지구의 눈엔 핏발이 자주 서고 눈물이 눈동자 밖으로 흘러넘쳤습니다.

겨눠 총!
병사들은 밤중에만
방아쇠를 당깁니다
나방이를 쫓는 연기처럼
탄환이 쏟아집니다
흰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달아납니다
낮은 포복으로! 자세를 낮춰!
밤고양이처럼
총구에 제 눈동자를 매단 채
병사들이 다가갑니다
젖은 눈동자 위에서
한번도 눈 깜박이지 못하는
핏발 선 안구를 짓밟고

김혜순(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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